참으로 많은 이야기를 간직한 도시, 그 이름 빠리..

짙은 파랑의 하늘 아래 드리운 고운 모래밭에선 누구나 아이가 된다. 나뭇가지로 그림을 그리고, 글씨도 써보고, 맨발로 뛰어다니며, 발자국을 새기거나, 이내 드러누워 흘러가는 조각구름만 한없이 쳐다본다. 아.. 어린 시절의 추억이 여기 있구나.

한 조각 한 조각의 첨탑들이 하늘을 찔러 올린다. 건축인가? 아니, 이것은 손수 만든 수공예라 일컬어져야 한다. 너무 웅장하여 그 곳 앞에 서면 무척이나 벅찬 감격을 느낀다. 돌 하나하나, 결국 누군가가 어디로부터 날렀고, 깎고 다듬었고, 장식을 새겼고, 짊어져 옮겼으며, 그렇게 한 층 두층 손으로 지어 올린 것이기에.. 나라들 곳곳에 이와 같은 거대한 공사들을 가능하게 했던, 풍요와 번영의 시대가 광장 앞에 펼쳐진 모습을 너무나도 쉽게 상상할 수 있는 것만 같았기에..

크리스마스를 한 주 앞둔 겨울, 델프트의 오후 5시는 매우도 어두웠다. 스산한 바람까지 불기도 했다. 가끔은 빗방울이 날린다. 델프트 야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호텔방을 얻은 것은 무척이나 행운이었다. 새 보금자리를 꾸리기 위해 낯선 이국 땅에 도착하였지만, 시작은 왠지 여느 여행못지 않게 황홀하다.

아는 사람만 안다. 대한민국의 동해 바다가 그렇게도 멋진 바다라는 것을..
낚시대를 드리워본다. 한 참을 서 있어도 도통 입질이 없다. 물때를 못 맞췄나보다. "못 잡아도 괜찮아. 가득한 햇살이 느껴지니?" 탁 틔인 멋진 경관 앞에 가슴이 뻥 뚫린다.